스포츠 베팅의 역사를 보여주는 이탈리아 토토칼초 경기 결과판과 판매점 내부

스포츠 베팅의 역사

2026년 07월 25일

스포츠 베팅을 처음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질문에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답하기 어렵습니다.

경기 결과를 두고 내기하는 행위는 고대부터 있었지만, 오늘날처럼 운영자가 배당을 제시하고 경기표를 발행해 결과를 정산하는 체계는 훨씬 뒤에 만들어졌습니다. 영국 경마의 북메이커, 프랑스의 공동 배당, 영국의 축구 풀과 이탈리아의 토토칼초가 서로 다른 시대에 등장했고, 이러한 변화가 쌓여 현재의 스포츠 베팅으로 이어졌습니다.

스포츠 베팅은 언제 시작됐을까

스포츠 베팅의 역사를 보여주는 고대 로마 전차 경주 삽화

스포츠 베팅의 정확한 시작 시점은 알기 어렵습니다. 경기나 경주의 승자를 두고 개인끼리 조건을 정하는 내기는 제도나 사업으로 기록되기 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고대 올림픽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7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초기 대회는 달리기 중심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권투, 레슬링, 전차 경주를 비롯한 여러 종목이 추가됐습니다. 관중이 모이는 경기가 늘어나면서 그 결과를 예상하는 내기도 함께 나타났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전차 경주와 검투 경기의 승패를 두고 내기하는 일이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법률에서도 오늘날 스포츠 베팅에 해당하는 운동 경기 관련 내기를 일반적인 도박 금지와 다르게 취급한 흔적이 확인됩니다.

다만 고대의 내기를 오늘날의 스포츠 베팅 산업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습니다. 당시에는 관중들이 서로 조건과 금액을 정하는 개인 간 약속에 가까웠으며, 한 운영자가 전체 참가자를 상대로 배당을 제시하고 정산을 맡는 구조는 아니었습니다.

현대 스포츠 베팅과 연결되는 변화는 사람들이 경기 결과에 무엇인가를 걸기 시작한 순간보다, 이를 전문적으로 받아 주는 운영자가 등장하면서 시작됐습니다.

1795년 해리 오그던과 근대 북메이커의 등장

1790년대 영국 경마장과 근대 북메이커의 등장을 보여주는 경주 그림

근대 스포츠 베팅의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 영국의 해리 오그던입니다.

오그던은 1790년대 중반 영국 뉴마켓 히스 경마장에서 활동했습니다. 당시에도 경마 내기는 흔했지만, 주로 두 사람이 서로 상대를 정하고 같은 조건으로 돈을 거는 방식이었습니다.

오그던은 경주에 출전한 말 전체를 살펴보고 각 말의 승리 가능성을 다르게 평가했습니다. 강하다고 판단한 말에는 낮은 배당을, 승리 가능성이 작다고 본 말에는 높은 배당을 제시했습니다.

기네스 세계기록은 오그던을 전체 출전마에 서로 다른 배당을 제시해 수익을 낸 최초의 북메이커로 알려진 인물이라고 설명합니다. 스포츠 베팅 자체를 발명한 사람이라기보다, 현대적인 북메이커 방식의 초기 형태를 만든 인물에 가깝습니다.

오그던이 남긴 핵심 변화는 운영자의 등장입니다. 개인끼리 직접 돈을 걸던 경마 내기에 제3자인 북메이커가 들어왔고, 각 말의 승리 가능성을 판단해 서로 다른 배당을 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하나의 경기에 여러 선택지와 배당이 표시되는 방식은 18세기 영국 경마장에서 나타난 이러한 변화와 연결돼 있습니다.

조셉 오러와 공동 배당 방식의 등장

조셉 오러가 공동 배당 방식을 발전시킨 19세기 프랑스 경마장의 베팅 장면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영국의 북메이커와 다른 방식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은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사업가 조셉 오러입니다. 오러는 1860년대 프랑스 경마 시장에서 파리뮤추얼로 불리는 공동 배당 방식을 발전시켰습니다.

파리뮤추얼은 운영사가 경기 전에 지급 배당을 확정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참가자들이 낸 금액을 하나의 자금으로 모은 뒤 운영 수수료를 제외하고, 적중한 사람들이 각자의 베팅 금액에 따라 나누어 받습니다.

어떤 선택에 얼마가 모였는지에 따라 최종 지급액이 달라지므로 베팅이 마감되기 전에는 정확한 배당이 확정되지 않습니다. 오러의 방식은 운영자가 참가자와 직접 승부하는 대신, 여러 사람의 금액을 모아 정산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조셉 오러에게는 스포츠 베팅의 역사 밖에서도 알려진 이력이 있습니다. 그는 1889년 샤를 지들레르와 함께 파리 몽마르트르에 물랭루주를 연 인물이기도 합니다. 경마장의 배당 구조를 바꾼 사업가가 훗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장을 만든 것입니다.

해리 오그던과 조셉 오러의 역할은 서로 다릅니다. 오그던은 운영자가 결과별 배당을 제시하는 북메이커 방식의 발전과 연결되고, 오러는 참가자들의 금액을 하나로 모아 적중자에게 나누는 공동 배당 방식을 발전시켰습니다.

두 사람 중 누구도 스포츠 베팅 전체를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각각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서로 다른 운영 구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리틀우즈와 영국 축구 풀의 대중화

리틀우즈 축구 풀 경기표를 확인하는 영국 사무실의 흑백 사진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스포츠 베팅의 중심은 경마장에서 축구 경기표로 넓어졌습니다.

축구 풀은 한 경기의 승자만 고르는 방식이 아닙니다. 여러 축구 경기의 결과를 한 장의 표에 예상하고, 정해진 수 이상의 결과를 맞힌 참가자가 모인 금액을 나누어 받는 방식입니다.

영국에서는 1923년 존 무어스, 콜린 애스컴, 빌 휴스가 리틀우즈 풋볼 풀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축구 결과 예측을 처음 생각해 낸 것은 아니지만, 축구 풀을 대중적인 사업으로 성장시킨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출발은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1924년 2월 처음 배포한 경기표 4,000장 가운데 돌아온 것은 35장이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1만 장을 인쇄했지만 접수된 경기표는 단 한 장뿐이었습니다.

콜린 애스컴과 빌 휴스는 더 이상의 손실을 막으려 했지만, 존 무어스는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경기표 접수 방식을 개선하고 운영을 이어간 결과 1927년 3월에는 네 종류의 풀이 운영됐고, 매주 접수되는 경기표도 2만 장에 이르렀습니다.

리틀우즈의 성장은 사람들이 스포츠 베팅에 참여하는 장소를 바꿨습니다. 경마장에 직접 가거나 북메이커를 만나지 않아도 집에서 여러 경기의 결과를 적은 뒤 우편이나 지역별 수거망을 통해 경기표를 제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스포츠 베팅이 특정 경기장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을 넘어, 많은 사람이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축구 예측 사업으로 확대된 것입니다.

1946년 시살 경기표와 토토칼초의 등장

스포츠 베팅의 역사를 보여주는 1956년 이탈리아 토토칼초 축구 경기표

여러 축구 경기의 승리·무승부·패배를 한 장에서 예상하는 방식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에서도 새로운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스포츠 기자 마시모 델라 페르골라, 파비오 예게르, 제오 몰로는 1945년 9월 3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시살을 설립했습니다. 이들이 준비한 축구 예측 사업은 전쟁 이후 침체된 이탈리아 스포츠를 되살리고, 축구 경기장 복구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시살의 첫 축구 예측 경기표는 1946년 5월 5일 공식적으로 선보였습니다. 참가자는 홈팀 승리를 뜻하는 1, 무승부를 뜻하는 X, 원정팀 승리를 뜻하는 2를 경기표에 표시했습니다.

현재도 축구 승무패를 나타낼 때 널리 쓰이는 1-X-2 표기가 당시 시살 경기표에 사용됐습니다. 여러 경기의 결과를 한꺼번에 예상한다는 점에서는 영국의 축구 풀과 비슷했지만, 스포츠 재건에 필요한 수입을 마련한다는 목적도 함께 갖고 있었습니다.

1948년 이탈리아 정부가 경기표 사업을 국가 관리 체계로 전환하면서 시살 경기표는 토토칼초라는 이름으로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1946년에는 시살의 축구 예측 경기표가 시작됐고, 1948년부터 토토칼초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각국의 스포츠토토 제도가 모두 이탈리아 토토칼초를 그대로 본뜬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여러 축구 경기의 결과를 한 장에서 예상하고, 그 수입을 스포츠 재원과 연결한 대표적인 초기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스포츠토토는 언제 시작됐을까

한국 스포츠토토 판매점에 진열된 농구토토와 배구토토 투표권

한국의 스포츠토토는 2001년에 시작됐습니다.

한국에서 스포츠토토는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른 체육진흥투표권 사업으로 운영됩니다. 국민체육진흥법은 체육진흥투표권을 운동경기 결과를 적중시킨 사람에게 환급금을 지급하는 표로 정의합니다.

국내 도입을 위한 제도적 준비는 1999년 국민체육진흥법 개정과 2000년 시행령 개정을 거쳐 진행됐습니다. 2001년에는 체육진흥투표권 수탁사업자가 선정됐고, 축구와 농구를 대상으로 한 토토 상품 네 종류가 출시됐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체육진흥투표권은 2001년 10월부터 도입된 국가 정책 사업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지원하고, 국민 여가 체육 육성과 국민체육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주요 도입 목적이었습니다.

조성된 수익금은 국민체육진흥기금으로 편입돼 생활체육과 전문체육, 유소년·아마추어 스포츠, 체육시설 확충 등을 지원하는 재원으로 활용됐습니다. 따라서 한국 스포츠토토는 특정 사업가가 만든 민간 상품이 아니라, 법률 개정과 정부의 사업 설계, 수탁사업자 선정을 거쳐 도입된 체육진흥투표권 제도입니다.

이탈리아 토토칼초와 한국 스포츠토토에는 여러 경기의 결과를 예상하고 스포츠 재원을 조성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체육진흥투표권은 국민체육진흥법에 근거해 별도의 운영 체계를 갖춘 국내 제도입니다.

온라인 스포츠 베팅과 실시간 방식의 등장

실시간 스포츠 중계와 경기별 배당 정보가 표시된 스포츠북 내부

초기 스포츠 베팅은 경마장이나 판매점 같은 접수 장소와 종이 경기표에 의존했습니다. 영국의 축구 풀처럼 우편으로 경기표를 보내는 방식도 사용됐습니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이러한 구조는 달라졌습니다. 경기 일정과 배당 확인, 선택 접수와 결과 처리가 온라인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컴퓨터에 이어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장소의 제약도 줄어들었습니다.

경기 시작 전에 결과를 예상하는 방식뿐 아니라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상황을 반영하는 실시간 방식도 등장했습니다. 연구 자료에 따르면 경기 중 베팅은 1990년대 후반 일부 북메이커가 전화로 접수하던 형태에서 시작해 온라인 서비스로 확대됐습니다.

실시간 경기 데이터와 중계 기술이 발전하면서 경기 도중에도 새로운 선택지와 배당을 제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종이 경기표 시대에는 한 경기가 시작되면 베팅도 사실상 끝났지만, 온라인 환경에서는 경기 상황에 따라 선택지가 계속 달라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터넷이 스포츠 베팅의 기본 원리를 새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달라진 것은 접수 장소와 처리 속도였습니다. 경마장과 종이 경기표에서 이루어지던 과정이 온라인으로 옮겨갔고, 실시간 데이터가 더해지면서 경기 도중에도 참여하는 방식이 만들어졌습니다.

스포츠 베팅의 역사를 만든 인물과 변화

스포츠 베팅의 역사는 한 명의 발명자를 찾는 이야기라기보다 여러 인물과 제도가 각 시대의 운영 방식을 바꾼 과정에 가깝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경기와 경주의 결과를 두고 개인적인 내기가 이루어졌습니다. 해리 오그던은 1790년대 영국 경마장에서 출전마마다 서로 다른 배당을 제시했고, 조셉 오러는 1860년대 프랑스에서 참가자들의 금액을 하나로 모아 적중자에게 나누는 공동 배당 방식을 발전시켰습니다.

1923년 존 무어스와 동업자들이 시작한 리틀우즈는 축구 풀을 영국의 대중적인 사업으로 키웠습니다. 1946년 마시모 델라 페르골라와 동료들이 선보인 시살 경기표는 1948년 이탈리아의 토토칼초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2001년 국민체육진흥법에 근거한 체육진흥투표권 사업이 시작되면서 스포츠토토가 등장했습니다. 이후 인터넷과 실시간 데이터 기술은 경기표를 접수하고 결과를 처리하는 장소와 속도를 바꿨습니다.

결국 스포츠 베팅의 역사는 사람들이 언제부터 승부를 예상했는지만 보여주는 기록이 아닙니다. 개인끼리 주고받던 내기에 누가 배당을 붙였고, 누가 여러 사람의 금액을 하나로 모았으며, 이러한 방식이 어떻게 종이 경기표와 국가 제도, 온라인 환경으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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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벳 가이드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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